한국의 사찰

사찰 다비식, 불교에서 바라본 삶과 죽음의 철학

jk-1210 2025. 8. 17. 17:28

사찰에서는 스님이 생을 마감하면 세속의 장례와는 다른 특별한 의식이 치러진다. 바로 다비식이다. 다비식은 스님의 육신을 불에 태워 부처님 곁으로 보내드리는 불교 장례 의식으로, 단순한 화장이 아니라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불교 철학이 담겨 있다.

다비식은 소멸이 아니라 해탈의 과정으로 이해되며, 그 불꽃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불교는 죽음을 끝이 아닌 또 다른 인연의 시작으로 보기에, 다비식은 슬픔 속에서도 경건함과 장엄함을 잃지 않는다. 오늘은 사찰 다비식이 가진 철학적 의미와 그 속에 담긴 불교적 사유를 따라가 본다.


다비식 법요 장면
다비식 법요 장면

다비식의 기원과 역사

다비식(茶毘式)은 불교에서 전해 내려오는 전통적인 장례 방식으로, 어원은 산스크리트어 śarīra-dāha에 기원을 둔다. 이는 단순히 ‘화장(火葬)’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불을 통한 정화와 해탈을 상징하는 불교적 의례를 포괄한다. 역사적으로 부처님(석가모니)의 열반 직후 행해진 장례 역시 다비식이었으며, 불교의 전파와 함께 중국,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로 확산되었다.

한국에서는 삼국시대부터 다비식이 기록에 나타나며, 특히 고려 시대에 불교가 국가적 종교로 자리 잡으면서 스님의 장례는 거의 예외 없이 다비식으로 치러졌다. 조선시대 유교적 장례문화가 지배적이던 시기에도, 불교 내부에서는 다비식이 스님들의 전통 장례로 지속되었다. 이는 단순히 장례 방식의 차이가 아니라, 불교적 생사관(生死觀)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적 행위로 이해할 수 있다.

불교에서 다비식이 갖는 의미

불교의 핵심 교리 중 하나는 무상(無常)과 무아(無我)이다. 인간의 육신은 영원하지 않으며,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한다. 다비식은 이러한 무상관을 극적으로 드러내는 의례다. 육신은 불에 의해 소멸하지만, 이는 단절이 아니라 또 다른 인연의 시작을 의미한다.

불교에서 불(火)은 소멸과 정화의 이중적 상징을 갖는다. 다비식의 불길은 몸의 물질적 집착을 태우는 동시에, 수행자의 정신적 해탈을 돕는 상징적 장치로 기능한다. 다시 말해, 다비식은 죽음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해탈과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길목으로 해석한다.

불교 경전인 『대반열반경』에서도 부처님의 다비 이후 사리가 남았다고 전해지는데, 이는 단순한 육체적 잔재가 아니라 수행과 공덕의 상징으로 숭배되었다. 따라서 다비식은 개인의 죽음을 넘어, 공동체 신앙과 불교적 깨달음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의식이라 할 수 있다.

다비식 절차와 의식의 구성

다비식은 크게 세 단계로 나누어진다. 첫째는 법요(法要) 단계다. 이때 스님의 생전 공덕을 기리고, 불교의 가르침을 낭독하며, 염불과 범패가 울려 퍼진다. 이는 단순한 추모가 아니라, 죽음을 수행의 연장선으로 해석하는 의례적 과정이다.

둘째는 다비(火葬) 단계다. 시신은 깨끗하게 정리된 후, 특별히 준비된 장작더미 위에 안치된다. 장작은 단순한 연료가 아니라, 불교적 상징성을 지니는 나무가 선택되기도 한다. 불이 붙는 순간, 참석한 승려와 신도들은 경전을 독송하며, 소멸이 곧 정화이자 해탈임을 마음속으로 새긴다.

셋째는 사리 수습(舍利 掃集) 단계다. 다비가 끝난 후 남은 사리는 단순한 유골이 아니라, 신앙적 의미가 부여된 성물(聖物)로 간주한다. 사리는 사리탑에 봉안되거나, 일부는 대중에게 나누어져 신앙의 대상이 된다. 이는 부처님의 사리 공양 전통과 맥을 같이하는 중요한 과정이다.

삶과 죽음에 대한 불교적 해석

불교에서 죽음은 단절이 아니다. 그것은 윤회(輪廻)의 한 과정이며, 해탈로 나아가는 관문이다. 다비식은 이러한 불교적 생사관을 가장 장엄하게 보여주는 의례라 할 수 있다.

육신은 불에 의해 소멸하지만, 불교에서는 몸과 마음을 별개로 본다. 물질적 육체는 무상하지만, 법신(法身)은 불멸한다고 믿는다. 다비식은 바로 이 사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의미에서 다비식은 단순한 장례가 아니라, 살아 있는 이들에게도 큰 울림을 준다. 죽음이 종말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임을 일깨우고, 무상함을 성찰하게 한다. 결국 다비식은 남은 이들에게 수행과 깨달음의 길을 새롭게 다짐하게 하는 ‘공동의 경전 낭독’과도 같다.

다비식에서 나타나는 공동체적 정신

불교에서 공동체(僧伽, 승가)는 수행의 핵심이다. 다비식 역시 개인의 장례를 넘어, 승가와 신도 전체가 참여하는 공동 의례로 기능한다. 스님의 해탈을 기원하는 독송과 의식은 공동체 전체가 죽음을 성찰하고 불법을 새롭게 다짐하는 계기가 된다.

특히 다비식은 불교적 ‘자비(慈悲)’와 ‘연대(緣帶)’ 정신을 집약한다. 스님의 삶을 함께 기리고, 죽음을 함께 받아들이며, 공동체적 애도와 성찰을 나누는 과정에서 불교 공동체의 본질이 드러난다.

현장에서 신도들은 단순한 방관자가 아니다. 그들은 염불을 통해 의례에 참여하고, 죽음을 통해 삶을 성찰한다. 다비식은 이렇게 공동체 전체의 영적 수행을 강화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현대 불교에서 다비식의 변화와 계승

현대 사회에서 전통적인 장작 다비식은 환경 문제와 안전상의 이유로 점차 줄어들고 있다. 대신 화장장 시설을 이용하는 방식이 일반화되었지만, 의식적 절차와 상징적 의미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또한 현대 불교에서는 다비식이 단순한 장례 의식이 아니라, 불교의 생사관을 대중에게 전하는 문화적 행사로 확장되기도 한다. 일부 사찰에서는 다비식을 대중에게 공개하여, 죽음을 교육적·성찰적 경험으로 승화시키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다비식은 시대적 변화 속에서도 본질을 유지하며 계승되고 있다. 그것은 단순한 장례가 아니라, 불교의 철학과 공동체 정신을 드러내는 상징적 의식이기 때문이다.


사찰 다비식은 단순한 장례 절차가 아니라, 불교의 철학을 집약적으로 드러내는 상징적 의식이다. 불길 속에서 육신은 소멸하지만, 그것은 무상과 해탈의 교리를 실천적으로 보여주는 행위다. 또한 다비식은 공동체가 함께 죽음을 성찰하고, 불법에 대한 새로운 다짐을 나누는 집단적 수행의 장이기도 하다.

결국 다비식은 죽음을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으로 바라보는 불교의 세계관을 가장 직접적으로 체현하는 의례다. 그 장엄한 불꽃은 소멸이 아니라 깨달음의 빛이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삶과 죽음의 본질을 묻고 있다.